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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의 택견이야기 넷] 신성한 무도판에서 이빨 보이는 택견!

결련택견협회
2020-06-03 23:19 | 920

필자는 2004년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문화마당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택견배틀(www.tkbattle.com)’ 이라는 현대적 명칭으로 ‘결련택견(택견의 단체전 경기)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이제 5년째가 되다 보니 어느덧 자리를 잡아 제법 마니아도 생기는 등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분들이 찾아 오셔서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곤 하신다.

2006년도의 일로 기억된다. 이름을 대면 무예계에서는 알아주는 무예단체의 회장님들 몇 분이 경기장을 방문해 주셨다. 마침 그날따라 좋은 경기가 진행되어 택견판이 신나게 달아올라 화끈한 승부가 벌어졌다. 경기가 끝나고 회장님들이 돌아가시면서 필자에게 격려와 충고를 해주셨다.

“도회장, 택견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치는구먼. 이 대회를 잘 키우면 앞으로 크게 될 수 있겠어. 그런데 말이야, 다 좋은데 왜 신성한 무도판에서 선수들이 이빨들을 보이고 그러는지...... 앞으로 신경 좀 쓰시게나!”

이빨을 보인다고 표현하신 것은 아마도 택견꾼들이 경기 중에 택견꾼들끼리 또는 관중들과 함께 재미있는 농 비슷한 응원전을 하면서 웃느라고 이가 보인 모습을 꼬집으신 것 같았다. ‘선배님, 바로 그런 것이 결련택견의 가장 큰 멋입니다!’ 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일러주시는 선배님들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바 아닌지라 그냥 “예, 앞으론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평생을 무도계에 몸담고 살아 온 무도인에게 엄숙하고 진지해야 할 무도경기 중에 허연 이를 드러내어 웃으며 겨루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존의 무도는 항상 엄숙하고 진지함을 기본으로 하였다. 필자도 택견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런 방식으로 무도를 배워왔고 접해왔다. 그러나 겨루면서도 흥이 나는, 그래서 웃으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겨루기 경기가 바로 우리무예 택견경기인 결련택견이다.

일본의 무도는 사무라이라는 무사집단에 의해서 행해져왔고 소림사무술은 승려라는 특수한 집단에 의해서 수련되는 등 외래의 다른 무예들의 대부분이 전문적인 무술인에 의해 행해져 온 것과는 달리 택견은 마을과 마을의 집단 겨루기 형태로 민중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전되어왔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마을 간의 겨루기지만 어떤 원한관계나 커다란 이권을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보상 없이 단순히 마을의 명예를 걸고 피 끓는 젊은이들이 한바탕 힘을 겨루며 기량을 뽐내보자는 취지였다. 경기규칙도 현대의 이종격투기와 같이 녹다운제가 아니라 씨름과 같이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한번만 발로 얼굴을 차면 이기게 하여 커다란 부상이 날만한 위험요소를 애초에 배제함으로써 마을 간의 불화의 소지를 없앴다.

그러다보니 겨루기 경기라고 해도 긴장감 보다는 마을 간의 흥겨운 기(氣) 싸움처럼 화기애애한 즐거움이 가득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참가한 택견꾼들에게는 적당한 긴장감 속에 자신들의 기량과 힘을 뽐내고픈 젊은 열정의 배출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지함과 결연한 의지로 가득한 다른 무예와 달리 결련택견은 다 함께 어울리며 하나 되는 대동(大同)의 정신이고 풍류와 신명이었다.

필자가 택견배틀을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택견의 신명과 흥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그저 노래 한 곡만 부르라고 해도 긴장이 되는 판인데 운동경기를, 그것도 상대와 몸을 부딪치며 겨루기를 하라면 얼마나 긴장이 되고 경직이 되겠는가? 하여 처음에는 신명과 풍류는커녕 엄숙한 분위기와 싸한 긴장감마저 맴돌았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경기가 잘 안풀리거나 혹시 심판의 판정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 싶으면 거칠게 항의하고, 어떤 택견꾼은 물통을 발로 걷어차는 등 여러 차례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포기하지 않고 경기 때 마다 심판과 감독, 그리고 선수들에게 결련택견 경기를 행해왔던 선조들의 정신을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다행히 이미 결련택견의 멋을 알고 있었던 지도자들과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젊은 택견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경기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점차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난장스런 무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내며 풍류와 신명의 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싸우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 되어 다 같이 즐기려는 잔치의 마당을 만들려고 경기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 승패를 떠나, 소속 단체를 떠나, 연배를 떠나 서로 격려하며 친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가슴 깊숙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형식이나 경기규정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겨루면서도 즐길 줄 알았던 선조들의 풍류와 신명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필자는 이제 택견계승의 작은 발걸음을 뗀 셈이라고 자부한다. 세계의 어떤 격투기 경기에서 우리민족의 결련택견과 같이 신명과 흥으로 즐기면서 하나 되는 풍류의 멋을 찾아볼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꼭 계승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선조들의 멋이라고 본다.

이빨을 보여선 안되는 신성한 무도판에서 감히(?) 이를 보일 수 있는 택견이 필자는 좋은 무예라고 생각한다. 진지함과 엄숙함이 강조되었던 20세기를 지나 인간의 행복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는 21세기에는 절제와 진지함, 그리고 엄숙함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다른 무도보다 즐거움과 대동으로 이루어진 택견이 가장 각광받는 시대가 되기를 바래본다.

 

본 칼럼은 2009년 무카스에 연재된 <택견꾼 도기현의 택견이야기>입니다.

~2020년 11월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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