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택견을 ‘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조민욱 씨는 “택견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겨루는 것이고 형이나 투로도 없으니 놀이”라고 하였다(달마야 장풍 받아라, 2002). 최근에는 이각수 씨가 무예신문에서 “택견은 문화재는 될 수 있어도 전통무예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놀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www.mooye.net/기고).
그러한 주장은 택견에 대한 비하 의식이 깔려있다고 곡해될 소지가 있어 택견인들에게는 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택견 계승자 중의 한 사람인 필자도 택견을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놀이는 무예보다 격이 떨어지는 문화이고 나아가 놀이인 택견은 무예가 아닌 것일까?
놀이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게임(game)이 된다. 그런데 게임과 스포츠(sports)는 거의 같은 것이다. 스포츠는 체육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놀이(game)의 근대화된 기획품’으로 게임과는 여러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같은 문화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군대나 학교 또는 직장에서 시간과 공간만 허락된다면 우리국민이 가장 즐겨하는 놀이 중의 하나인 ‘족구’의 예를 들어보자. 친구들끼리 또는 군대에서 전우끼리 여가 삼아 재미로 하면 놀이(game)이지만, 만일 ‘전국족구대회’가 열려 대규모의 행사가 된다면 그것은 그냥 그대로 경기(sport)가 되는 것이다. 게임이나 스포츠는 모두 일정한 규칙(rules)과 그 규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삼자(三者), 즉 심판(referee)이나 관중(spectator)이 있다는 점 등에서 똑같은 형태의 문화이다. 둘은 단지 행해지는 규모나 인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택견은 옛날 표현으로 하자면 ‘놀이(戱)’이고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게임, 즉 스포츠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포츠 중 상대와 겨루기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경기방식을 가지고 있는 태권도나 유도 또는 복싱이나 레슬링 같은 격투기스포츠가 되는 셈이다. 유교문화권에서 살아 온 한국적 관점에서 본다면 놀이라는 것을 천박한 것이고 현대적 의미에서 스포츠는 가치 높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둘은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특히 놀이문화는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스포츠레저(sports & leisure) 분야로 가장 각광받는 산업이 되었으니 시대적 가치는 늘 변하기 마련인 것이다.
실전력이 뛰어난 택견
무예는 이렇게 택견과 같이 놀이형태, 즉 경기형태로 발전해온 것과 일정한 투로(鬪路, 중국무술의 권법이나 태권도의 품새 같은 것)에 의한 동작 위주로 전수되어 온 것으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각 무예마다 고유의 특징과 장단점이 있고 특히 수련생의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어떤 무예가 더 강한가를 논하는 것은 아주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태권도 도장에서 경기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고 품새만을 위주로 수련한 태권도 4단보다 선수로서 경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태권도 2단이 훨씬 더 실전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의 40년 가까운 무예수련의 경험을 통해 보면 단숨에 적을 살상케 할 수 있는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눈 찌르기, 낭심 걷어차기 등 살수(殺手)를 허공에다가 혼자서 수련하는 고수(高手)보다 실제로 경기에 참가하고 있는 복싱이나 유도, 무에타이 선수 등이 겨루기를 할 때 훨씬 더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다.
무예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또는 무예수련의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꽤 그럴싸한 철학적 논의는 뒤로 하고 일단 놀이형태로 발전해 온 택견은 대단히 실전적이며 실용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수많은 경기를 통해 축적된 경험에 의한 살아있는 기술로 상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잘 제압할 수 있는 합목적성을 가지고 꾸준히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택견이 단절되지 않고 지난 100년 동안 지속적인 경기를 통해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면 아마 지금 보여 지는 것보다 더욱 대단하고 훌륭한 격투기 스포츠로 발전되어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런 아픈 과거와 상관없이 놀이형태로 발전되어 온 택견은 여전히 실전력이 뛰어난 강한 무예임에는 틀림이 없다.
무예가 경기종목이 되면 놀이처럼 되어 그 가치가 없어진다며 경기화를 반대했던 많은 무예들이 근래에 와서 자신의 종목을 경기종목으로 만들려고 난리가 아니다. 동양무예의 진수라고 자랑하던 중국의 우슈(武術)도 권법부분과 무기술 부분의 표연경기와 동급 체급선수간의 자유대련으로 승부를 겨루는 산타(散打) 등으로 이제 와서 경기화(놀이화)하고 있으니 도대체 택견보다 몇 백년이나 뒤쳐진 경기화란 말인가?! 특히 요즘에는 놀이의 집합체인 올림픽에 태권도를 제치고 들어가려고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경기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우습게 보는 놀이형태의 겨루기 경기는 오히려 더욱 실전적인 강한 무인들의 표상이며 놀이형태의 무예는 무예의 퇴보나 저급화가 아니라 그 무예가 발전하여 이루어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발달된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