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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의 택견이야기 여섯] 가마니 두 장 위의 과학, '택견'

결련택견협회
2020-06-03 23:27 | 1,334

-택견경기를 하기 전의 준비자세-
택견은 상대와 마주 서서 한발을 앞으로 한 족장(발의 길이) 정도 내밀면 역시 앞으로 한발을 내디딘 상대의 발과 거의 같은 위치에 놓일 만큼 가까운 거리를 정해 놓고 계속 그 거리를 유지하며 경기를 한다.

 

‘택견이야기 다섯(씨름엔 샅바, 택견엔 품)’에서 택견은 두 택견꾼이 고정되어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겨루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맨손무예가 손이나 발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공방(攻防)이 가능하므로 가까운 거리에서 겨룬다는 것이 택견만의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택견이 다른 맨손무예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고정된 자리, 다시 말해서 제자리에서 품을 밟으며 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장의 크기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가마니 두 장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도 경기가 가능했고 사람들이 바로 옆에 앉아서도 구경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경우 당연히 발차기가 가능한 거리에서 경기를 하지만 항상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발이 닿지 않는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를 견제하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치고 빠지는 등 거리가 항상 유동적으로 변한다. 그러한 거리의 변동에서 적당한 간격이 이루어지면 아주 강력한 발차기가 나와 상대에게 커다란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태권도는 보호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택견은 상대와 마주 서서 한발을 앞으로 한 족장(발의 길이) 정도 내밀면 역시 앞으로 한발을 내디딘 상대의 발과 거의 같은 위치에 놓일 만큼 가까운 거리를 정해 놓고 계속 그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사진1 참조) 바닥에 품(品)자형의 삼각형을 그려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밟는 위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의 제자리에서 경기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양 선수가 너무 붙지도 또 너무 떨어지지도 않고 아주 가까운 거리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적당하게 가까운 거리는 ‘딴죽’이나 ‘낚시걸이’ 등의 걸이기술을 용이하게 해주며 아울러 심한 부상을 방지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가까운 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제자리에서 서로의 손바닥을 밀어 넘어뜨리는 ‘손바닥 밀기놀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거리가 가까우니까 확하고 세게 밀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불리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툭툭 가볍게 상대의 손바닥을 치면서 견제하다가 기회를 잡았을 때 타이밍을 잘 맞춰 탄력적으로 세게 밀면 된다.

 

그러므로 택견에서도 강하게 차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불리하기 때문에 안 차는 것이고 툭툭 가볍게 견제를 하다가 기회를 잡으면 순간적으로 세게 차거나 걸어 넘기면 된다. 슬슬 차라던가 밀어차라는 등의 다분히 주관적이거나 판단이 애매한 복잡한 규칙 등 많은 제약이 따르지는 않는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계속적으로 세게 차도 무방하나 노련한 상대라면 강한 발길질을 품밟기로 여유 있게 피하며 세게 차려고 힘이 들어가 느려지고 동작이 커진 상대를 쉽게 제압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상대의 강한 발길질에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 그래서 송덕기 스승님은 택견판에서 품을 잘 못밟으면 다리몽둥이가 남아나질 않는다고 하셨다. 구기(球技)인 축구를 하다가도 부상이 생기는데 격기(格技)인 택견에서 전혀 부상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일정하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대한택견연맹에서는 가까운 거리의 유지를 위해 항상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야 한다는 ‘대접’이라는 개념을 송덕기 스승님(宋德基, 1893~1987, 택견 인간문화재)에게 배웠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택견경기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대한택견연맹의 지도자들 외에는 대접에 대해서 송덕기 스승님의 다른 제자들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1950년대 제자인 박철희 사범님에서부터 1960년대의 김병수 사범님, 1970년대의 임창수 사범님, 고(故) 신한승 선생님, 양창곡 관장님, 그리고 1980년대 초반의 필자는 물론이고 마지막까지 스승님을 모셨던 주정훈, 이호범, 권수일, 최유근 등도 대접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대한택견연맹의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할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르게 해석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어쨌든 필자가 여기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스승님의 대접에 관한 유무(有無)가 아니라 택견경기의 원리상 굳이 대접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정된 가까운 거리에서의 공방-
택견은 가까운 거리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며 경기를 하기 때문에 한 발을 앞으로 내어 놓는 대접을 하지 않아도 경기의 흐름이 깨질 염려가 없다.

 

택견은 이미 충분히 가까운 거리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며 경기를 하기 때문에 한 발을 앞으로 내어 놓는 대접을 하지 않아도 경기의 흐름이 깨질 염려가 없다.(사진2 참조) 두 택견꾼 모두 대접을 하지 않고 원품(양발을 옆으로 한 족장 정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으로 서 있어도 ‘복장지르기’나 ‘발따귀’ 등으로 충분히 발길질 공격이 가능하고 또는 한발을 순간적으로 앞으로 내딛으며 갈지자(之) 모양으로 ‘딴죽’ 등의 공격을 할 수도 있다.(사진3, 4 참조) 스승님은 뛰어난 택견꾼일수록 ‘좌우밟기(원품에서 발을 앞으로 내어 놓지 않고 계속 좌우로 밟으며 상대를 견제하는 동작)’를 자주 사용한다 하셨고 당신도 주로 좌우밟기를 즐겨하셨던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마도 대접은 고정된 제자리에서 경기를 한다는 택견의 기본 규칙을 놓친 상태에서 가까운 거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혹 상대의 공격 등으로 뒤로 밀리거나 피하면서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상대 택견꾼이 쫓아가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밀려간 택견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경기를 속행하기 때문에 역시 기본 거리가 유지된다. 그런데 밀려 간 택견꾼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시간을 끌면 관중들이 “좁혀라, 좁혀!” 라고 외쳤고, 앞의 꼭지점을 밟으며 상대와의 거리를 확 좁힌 뒤 다른 발로 공격을 하다 서로 엉키게 되면 역시 관중들이 “물렀거라!” 또는 “나 앉거라!” 등으로 떨어지게 했다. 때론 너무 신중하여 서로 공격하지 않고 계속 견제만 하고 있으면 “까라, 까!”라고 응원을 한다. 이렇듯 택견은 간단한 거리유지의 개념만을 가지고 심판 없이도 관중들의 훈수로 쉽게 행해질 수 있는 간편한 경기이다.



택견은 경기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특별한 보호구나 복잡한 규칙을 만드는 대신 거리제한이라는 지극히 간단하고 획기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이는 택견이 무예로써 강하고 말고를 떠나 경기의 원활한 진행과 선수들의 안전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아주 간편하게 해결한 선조들의 위대한 창의성과 슬기가 돋보이는 점이다. 힘을 바탕으로 하는 씨름과 대비하여 순발력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상대를 걸고 차면서도 큰 부상이 나지 않게 한바탕 기량을 겨룰 수 있도록 구성된 택견은 무예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필자는 택견에게 ‘가마니 두 장 위의 과학’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 보았다.

 

 

-원품의 거리에서도 항상 가능한 복장지르기-
스승님께서는 발길질에 의해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내장에 꽂히면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하여 택견경기에서는 몸통차기를 금하셨다. 단, 발길질의 구조상 다리를 구부리며 한 박자 쉬었다가 몸통을 밀어 차는 복장지르기만은 허용한다. 이것을 ‘는질러차기’라고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발바닥이 먼저 상대의 가슴에 부착된 상태에서 힘을 써 미는 것만을 허용한다. 발이 상대의 몸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힘을 쓰면 어떻게 차든 옛법의 일종인 몸통차기 공격이 되어 반칙이 된다. 이러한 는지르기 형태의 복장지르기는 고정된 가까운 거리에서만 가능한 기술이다.

 

 

-갈지자(之) 모양의 딴죽-
서로 발을 앞으로 내어 놓지 않고 견제하는 상태에서 한 택견꾼이 한발을 순간적으로 앞의 꼭지점을 밟으며 거리를 좁혀 ‘딴죽’ 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본 칼럼은 2009년 무카스에 연재된 <택견꾼 도기현의 택견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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